1개월 전

[데이터와 트렌드로 게임 읽기] 유비소프트 '더 크루'를 둘러싼, 게임을 즐길 권리 보장 문제

책이나 영상물 등의 다양한 판매용 매체와 마찬가지로, 게임 소프트웨어를 패키지로 구매하거나 또는 다운로드했을때 사용자는 해당 게임에 대한 이용권, 즉 게임을 즐길 권리를 획득하게 됩니다. 물리적으로 손상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다시 읽을 수 있는 책, 테이프나 디스크 등의 물리 매체와 재생 가능한 기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감상할 수 있는 영상물과는 달리 게임은 이 이용권 보장 관련으로 조금 더 복잡한 면이 있는데요. 인터넷을 통해 게임 제공 회사의 서버에 연결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게임들이 많고, 최근에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처럼 다양한 게임을 월간 구독으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이번 글에서는 프랑스의 게임 대기업 유비소프트(Ubisoft)의 '더 크루(The Crew)'를 둘러싸고 불거진 게임의 이용권 보장 문제에 대하여 소개해 볼까 합니다.

 

'더 크루' 게임 스크린샷. 출처: https://gamerant.com/the-crew-ubisoft-connect-revoke-access/

'더 크루' 게임 스크린샷. 출처: https://gamerant.com/the-crew-ubisoft-connect-revoke-access/

 

'더 크루'는 미국 전역을 게임 규모에 맞게 축소한 오픈 월드(*Open World - 게임의 세계가 구역 단위로 나뉘지 않고 열려 있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게임 디자인) 레이싱 게임으로, 2014년 12월에 플레이스테이션 4, 엑스박스 원, 엑스박스 360, PC로 출시되었습니다. 약 6년 후인 2020년 11월에는 아마존의 클라우드 게임 스트리밍(*사용자의 단말기에서 직접 구동하는 게임이 아닌, 게임 제공자의 인터넷 서버에서 게임을 구동하고 사용자의 단말기에 영상 데이터를 전송하여 플레이하는 게임) 서비스 루나(Luna)용으로 출시되기도 했지요.

이 게임은 혼자서 즐길 때에도 상시 온라인 접속을 요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싱글 플레이와 멀티 플레이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어, 게임 세계를 달리다 보면 같은 장소를 달리고 있는 다른 사용자를 만날 수 있고, 게임 이름과 같은 '크루'라는 즉석 소규모 집단을 구성해 함께 스토리를 즐기거나 다양한 부가 레이스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이 동시에 참가하는 경쟁 요소도 있습니다.하지만 혼자서 스토리 진행이나 자동차 튜닝 등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게임 플레이에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수많은 사용자가 게임 세계에 접속해서 즐기는 것을 전제로 한 온라인 게임과는 다른 특성도 가지고 있지요.

유비소프트는 '더 크루' 출시 약 3년 후인 2017년 5월에 해당 게임이 누계 플레이어 수가 1,200만명에 달했다고 발표했고(링크), 2018년 6월에는 '더 크루 2(The Crew 2)', 2013년 9월에는 '더 크루 모터페스트(The Crew Motorfest)'라는 후속작이 출시되며 인기 시리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024년 3월 31일, 유비소프트는 시리즈 첫 작품인 '더 크루'의 인터넷 서버를 종료해 버립니다. 2023년 12월에 사전 공지를 하긴 했지만 말이죠. 기본 플레이 무료에 아이템이나 추가 서비스를 구매하는 형식의 온라인 게임이 이런 식으로 서비스 종료하는 것은 그나마 흔한 사례이긴 합니다만, '더 크루'는 싱글 플레이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패키지 구매 형식의 게임인지라 무게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머시니마(*Machinima - 게임 그래픽을 사용해서 만든 영화적인 영상) 및 게임 리뷰 전문 유튜버 로스 스코트(Ross Scott, 유튜버 닉네임 Accursed Farms)는 이러한 유비소프트의 결정에 항의하는 목적으로 'Stop Killing Games', 즉 더이상 게임을 죽이지 말라는 이름의 온라인 서명운동 사이트(링크)를 열었습니다. 1,200만명 이상의 이용자라는 규모와 프랑스(유비소프트 본사 소재지)의 강력한 소비자 보호법을 감안하면 이 서명운동의 성공 가능성은 높고, 다른 게임 기업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게임 사용권을 빼앗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하면서 말이죠.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답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24년 4월 기사에 따르면 유비소프트가 직접 운영하는 PC 디지털 게임 상점 '유비소프트 커넥트(Ubisoft Connect)'에서 '더 크루'를 구매한 일부 사용자 계정의 해당 게임 구매 이력을 고지 없이 삭제한 것이 밝혀졌습니다(링크). 9년 전에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의 디지털 게임 상점)에서 해당 게임을 구매한 사용자가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로 환불을 받았다는 것이 영어권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에서 화제가 된 것(링크)도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네요.

유비소프트는 최근 자사의 게임 구독 서비스 'Ubisoft+'의 확장을 중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고, 2024년 1월에는 구독 서비스 디렉터 필립 트렘블레이(Philippe Tremblay)가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을 소유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음악이나 영상물 이용자들이) CD 컬렉션이나 DVD 컬렉션을 소유하지 않아도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소비자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라는 발언(링크)을 해서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요.

 

'Ubisoft+' 로고. 출처: https://www.gamesindustry.biz/the-new-ubisoft-and-getting-gamers-comfortable-with-not-owning-their-games

'Ubisoft+' 로고. 출처: https://www.gamesindustry.biz/the-new-ubisoft-and-getting-gamers-comfortable-with-not-owning-their-games

 

'더 크루' 인터넷 서버 종료 및 구매 이력 삭제의 파장이 생각보다 컸는지, 2024년 9월에는 남은 시리즈 타이틀인 '더 크루 2'와 '더 크루 모터페스트'에 오프라인 모드를 추가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공식 SNS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링크). '더 크루' 자체는 이제 다시 즐길 방법이 공식적으로는 없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게임을 포함한 디지털 다운로드로 제공되는 컨텐츠에 '구매'라는 표현을 쓸 수 없게 하는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링크). 

 

글을 마무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을 이야기하자면, 온라인을 통한 멀티 플레이의 중요성이나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한 온라인 접속 의무화 등, 다른 매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임만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이 책이나 영화처럼 예술의 한 갈래로 자리잡은 현재야말로, 후세 사람들이 뛰어난 과거의 작품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보존할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업계 전반에 걸쳐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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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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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개월 전
    이른바 구독 서비스가 이 문제와 이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혹은 이북의 계약 혹은 서비스가 종료되었을 때 이북을 구매한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것이나... 만약 더 크루가 패키지판이 출시되지 않았다면 문제가 비교적 덜 불거졌을지도 모르겠고요. 싱글 플레이와 멀티 플레이의 경계가 희미했던 것도 사람들에게 게임을 보다 개인적인 것으로 여기게 해서 지금과 같은 반발을 끌어내지 않았나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서 말했듯 구독과 대여 서비스가 일반화된 이후로 생겨난, 내가 어떤 서비스를 잠시 이용료를 내고 이용하는 것이냐, 혹은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하는 것이냐의 문제의 연장이겠고요.
  • 1개월 전
    이번에도 좋은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저도 게이머지만 업계/소비자 문화에 그렇게 해박하지는 않은데 최근 알게 된 지식 중 스팀에서 게임을 구매하는 행위도 사실은 소장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들었어요
    게임을 소장하기보다는 플레이에 요구되는 라이센스 취득 형식이 소비자에게 일반화된 것이 요즘 트렌드 중 일부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책 시장도 마찬가지고요(이쪽은 도서정가제 때문에 전자책도 싸게 구매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더 문제가 심각하지만요)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의 권익이 보호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되네요 🤔
  • 1개월 전

    이번에 다가오는 네이버 시리즈온 종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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