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전

[데이터와 트렌드로 게임 읽기] 이용자 발길 돌리는 독성 게임 커뮤니티,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 다루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게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많은 게임들이 인터넷에 접속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플레이하는 온라인 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은 물론, 혼자서 플레이하는 싱글 플레이어 게임의 경우에도 해당 게임을 더 효율적으로 플레이하는 방법이나 숨은 아이템 찾기 등의 공략 정보를 보기 위해 커뮤니티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즐거움, 혼자서는 찾기 어려운 정보를 발견하는 편리함 등의 순기능이 많은 게임 커뮤니티지만, 요즘에는 이러한 게임 커뮤니티가 가져오는 역기능 쪽에 주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안에서 혐오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분위기가 당연시되고 특정 이용자층을 향한 괴롭힘이 일상화되어 버린 상황을 가리켜 영어권에서는 톡식(Toxic) 커뮤니티라고 하는데요, 직역하면 독성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독성 게임 커뮤니티가 해당 게임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텐데, 이제 그 악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2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로 게임 업계 관련 정신 건강 문제 개선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NPO '테이크 디스(Take This)'의 레이첼 코워트 박사(Rachel Kowert, Ph.D.)와 엘리자베스 킬머 박사(Elizabeth Kilmer, Ph.D.)가 글로벌 마케팅 조사기관 '닐슨(Nielsen)'에서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하여 2023년 8월에 발행한 리포트 '독성 게이머들이 주 고객층을 소외시킨다: 커뮤니티 관리에 관한 비즈니스 사례(링크)'에 실린 내용 중에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북미 지역의 청소년~성인 2,328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커뮤니티에서 독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게임에 소비하는 금액이 커뮤니티의 독성이 두드러지는 게임보다 월 평균 54% 높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독성이란 '욕설, 인종차별, 홀로코스트 부정, 여성혐오, 특정인의 안전에 대한 위협, 강간 및 살해 위협을 일삼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네요.

조사 대상인 게임 이용자 중 61%가 다른 이용자의 언행 때문에 해당 게임에 돈을 쓰지 않겠다고 결정한 적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있으며, 24%가 자주 같은 결정을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60%가 게임 커뮤니티 안에서 괴롭힘의 대상이 된 경험 때문에 게임 세션/매치를 그만두거나 게임 자체를 그만둔 적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있으며, 23%가 자주 같은 결정을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독성 게임 커뮤니티가 해당 게임에 끼치는 악영향은 이미 해당 게임을 즐기는 사람을 넘어, 해당 게임을 시작하려는 사람의 발길을 돌리는 결과까지 초래합니다. 조사 대상인 게임 이용자 중 72%가 특정 게임 커뮤니티의 평판 때문에 해당 게임 플레이를 피한 적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있으며, 27%가 자주 같은 결정을 한다고 대답했거든요.

또한, 이러한 악영향에 더 강한 영향을 받는 비율은 17세 이하가 18세 이상보다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도 위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문화가 건강하게 자라나는 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신세대 이용자층 형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죠.

독성 게임 커뮤니티가 게임 이용자의 발길을 게임에서 돌리게 하는 것은 물론, 게임에 돈을 쓰는 것도 주저하게 하는 악영향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는 위에서 언급한 조사 결과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게임 업계에서 아직도 화제가 되고 있는 소위 '집게손가락 음모론'을 한국 게임 대기업인 넥슨이 믿게 된 배경에 편향된 커뮤니티 여론 반영이 있었다는 경향신문 기사(링크)와도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게임 이용자는 물론 게임 개발 및 운영에 관여하는 기업의 의사 결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러한 독성 게임 커뮤니티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죠. 온라인 게임의 커뮤니티는 게임을 끝내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용하는 게시판형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게임 안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이용자와의 의사소통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러한 의사소통을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하는 글로벌 게임 기업의 사례가 있습니다. 온 가족이 즐기는 게임을 주로 지향하는 닌텐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닌텐도 게임 중 온라인 플레이가 중심인 타이틀을 꼽자면, 잉크로 바닥을 칠하며 대결하는 삼인칭 슈팅 게임 '스플래툰' 시리즈를 들 수 있습니다. 시리즈 최신작인 '스플래툰 3'를 기준으로 게임 중에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의사소통 표현은 자신이 있는 위치를 알리는 '이쪽이야'와 아무 상황에서나 쓸 수 있는 '나이스', 상대에게 당했을 때 자신이 쓰러진 장소를 알리는 '당했어'의 3종류 뿐으로,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채팅 기능은 없습니다. 스플래툰 시리즈는 저연령층이 많이 즐기는 게임이기도 하므로, 자칫 해로울 수도 있는 채팅 내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지요.

 

'스플래툰 3' 게임 안의 의사소통 표현 - 왼쪽 아래에 보이는 '이쪽이야'와 '나이스'.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스플래툰 3' 게임 안의 의사소통 표현 - 왼쪽 아래에 보이는 '이쪽이야'와 '나이스'.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또한 스플래툰 3를 포함하여 닌텐도 스위치로 출시된 많은 닌텐도 게임('모여봐요 동물의 숲',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등)에서는 게임 자체에서 음성 채팅을 지원하지 않고, 음성 채팅을 이용하려면 별도로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스마트폰 앱이 필요하며, 13세 미만의 닌텐도 어카운트로는 이용할 수 없는 등의 제약이 있습니다. '포트나이트' 닌텐도 스위치판 등의 게임이 자체 음성 채팅을 지원하는 것을 보면 닌텐도 스위치 하드웨어의 한계는 전혀 아니고, 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제한 없는 음성 채팅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문제점을 최대한 멀리하기 위한 의도적인 정책이라 생각합니다.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스마트폰 앱의 보이스챗(음성 채팅) 관련 안내. 출처: 앱 상에서 직접 캡처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스마트폰 앱의 보이스챗(음성 채팅) 관련 안내. 출처: 앱 상에서 직접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의 구성원은 결국 사람이고, 그 사람은 바로 옆에서 같이 게임을 즐기는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디지털 컨텐츠 퍼블리셔 LADbible의 캠페인 웹사이트 Say "Maaate"(링크)는 바로 이런 친구끼리의 의사소통에 주목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 Say "Maaate" 캠페인 웹사이트

출처: Say "Maaate" 캠페인 웹사이트

 

조사 결과 영국 여성 게임 이용자의 82%가 성차별적인 언행의 대상이 되었지만, 남성 게임 이용자 중 자기 친구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지적한 건 35%에 불과했다고 하네요. 그러니 게임 도중에 친구가 여성 이용자 관련으로 너무 나간 언행을 보인다면, 자제를 부탁하는 의미로 "Maaate"("이봐 친구" 또는 "얌마")라고 한마디 하라는 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 사이트 마지막 부분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이 온건하고 현실적이라 또 좋네요.

 

  • "Maaate"("이봐 친구" 또는 "얌마")처럼 친구끼리 할 수 있는 친숙한 단어를 사용해 만류하기
  • 성차별적인 대화나 '농담'에 같이 웃어야 한다는 압박을 떨쳐내기
  • 화제 바꾸기
  •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 때 이 문제에 관해 상의해 보기
  • 부적절한 코멘트나 대화에 끼지 말고 멀리하기
  • '그게 무슨 뜻이야?' 또는 '왜 그렇게 생각해?' 같은 질문을 던져보기

 

위에서 언급한 사례와 같이 독성 게임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요소인 게임 내의 의사소통이나 이용자들의 의식을 개선해 나가는 시도만큼이나,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도를 넘은 괴롭힘에 단호하게 법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며, 마침 외국에 좋은 선례가 있습니다.

현재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 SIE) 산하에 있는 미국의 게임 기업 '번지(Bungie)'는, 자사의 게임 '데스티니 2(Destiny 2, 한국 서비스명은 '데스티니 가디언즈')' 커뮤니티 매니저와 그 가족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이용자를 소송하여 승소, 약 50만 달러의 손해배상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소송에 관련된 전말은 영국 게임 정보 사이트 유로게이머(Eurogamer)의 기사(링크)에 자세한 설명이 있고, 한국 언론 뉴스1에도 관련 기사(링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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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1개월 전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친밀감이나 신뢰감이 있는 상대가 한 말이면 더 깊게 와닿으니까요
    주변 사람이 특정 대상에 혐오적 행동을 하고 있다면 한 번 짚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 지적을 한 사람이 되레 신뢰를 잃는 경우도 많다는 게 서글프지만요 🥲
  • 1개월 전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커뮤니티와 SNS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여러 연구들이 나오는 시점에서 독성 커뮤니티의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사회적으로 널리 다뤄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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