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데이터와 트렌드로 게임 읽기] 강한 여성, 다양한 정체성의 게임 캐릭터가 늘어나는 이유

다른 많은 문화 매체와 같이,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 즉 캐릭터에 관한 묘사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및 유럽의 개발사/유통사에서 대규모 자본을 들여 제작하는, 영화로 따지자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AAA(트리플 A) 게임에서 이러한 변화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요.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고, 비키니나 탱크탑 또는 미니스커트가 아니라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 또는 가죽옷이나 기계 부품으로 만든 갑옷으로 몸을 감싼 여전사 캐릭터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호라이즌'이나 '툼 레이더(리부트)' 및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라던가, 미국 뉴욕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종과 정체성의 인물들을 조명하는 서브 퀘스트(*주된 이야기 전개 이외에 곁들이로 즐길 수 있는 부가적 임무)가 돋보이는 '마블 스파이더맨' 게임 시리즈 등을 좋은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묘사는 스토리 중시 게임이나 1인용 게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대전 격투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신작이 나올 때마다 점점 다양한 인종과 외모의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하고, 기본 플레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FPS(*First Person Shooter - 1인칭 슈팅 게임) '헤일로 인피니트' 온라인 모드의 튜토리얼(*본격적인 게임 시작 전에 조작 방법 등을 배우는 부분)에는 강화복을 착용한 흑인 여성 교관이 등장하며, 자동차를 타고 멕시코를 누비며 다른 이용자들과 레이스를 펼칠 수도 있는 '포르자 호라이즌 5'의 플레이어 아바타 캐릭터는 성별에 관계 없이 다양한 옷을 입을 수 있고 의수나 의족을 착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는 서양에서 제작한 게임이나 성인이 주 대상층인 게임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슈퍼 마리오 시리즈 최신작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에선, 악당에게 납치되어 마리오의 구출을 기다리는 게 주된 역할이었던 피치 공주와 데이지 공주를 처음부터 플레이 가능 캐릭터로 사용할 수 있기도 하지요.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주인공 에일로이.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주인공 에일로이.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헤일로 인피니트' 온라인 튜토리얼에 등장하는 교관.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헤일로 인피니트' 온라인 튜토리얼에 등장하는 교관.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포르자 호라이즌 5' 플레이어 아바타 캐릭터용 의수와 의족.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포르자 호라이즌 5' 플레이어 아바타 캐릭터용 의수와 의족.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원더'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 출처: 게임 상에서 직접 캡처

 

이런 변화의 이유를 '개발자들이 특정 사상에 경도되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 등의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찾을 수 있죠. 강한 여성 캐릭터나 다양한 인종,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의 캐릭터를 굳이 게임에 집어넣지 않아야 더 많은 이용자들의 호응과 매출을 가져올 수 있는데, 소위 PC(*Political Correctness - 정치적 올바름)라고 일컫는 사상에 경도된 개발자들이 이러한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불필요한 묘사에 공을 들인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저는 이러한 변화가 게임이라는 문화의 성숙 과정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향유층이 10대에서 20대 남성 위주였던 예전과는 달리,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자연스레 다양한 고객층이 새로 생겨나게 되고,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AAA 게임이나 인기 시리즈 작품일수록 이렇게 다양해진 고객층에도 매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묘사에 신경을 쓰게 되니,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물론 뒷받침할 데이터도 가져왔습니다.

 

 

출처: Circana

출처: Circana

 

위 인포그래픽은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 기관 서카나(Circana, 구 NPD)에서 2023년 7월에 발표한 데이터(링크)로, 2023년 1월~4월 집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미국 게임 시장을 기준으로 콘솔(가정용 게임기) 게임 이용자의 47%, PC 게임 이용자의 50%, 모바일(스마트폰) 게임 이용자의 54%가 여성이며, 콘솔 종류별로는 닌텐도 스위치 이용자의 52%, 엑스박스 시리즈 이용자의 45%, 플레이스테이션 5 사용자의 41%가 여성입니다. 어떤 게임 플랫폼을 보더라도 최소한 40% 이상의 이용자가 여성이라는 이야기죠.

 

출처: Newzoo

출처: Newzoo

 

인종,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 신체 또는 정신적 장애 여부 같은 다양성에 관한 데이터도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시장조사 전문 기관 뉴주(Newzoo)에서 2022년 4월에 발표한 데이터(링크)에 따르면, 미국 게임 이용자의 46%가 여성, 20%가 라틴계, 15%가 흑인, 5%가 아시아계, 16%가 LGBTQIA+, 31%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 보유자입니다. 또한 미국 게임 이용자의 51%, 영국 게임 이용자의 42%가 DEI(*Diversity, Equity & Inclusion - 다양성, 공평성, 포용성)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대답했기도 하네요.

 

 

출처: Newzoo

출처: Newzoo

 

같은 출처에서 다른 그래프 하나를 더 인용해 보았습니다. 게임 이용자들이 꼽은 게임 회사가 중요시해야 할 이슈에 관한 그래프로, 순서대로 왼쪽부터 정치, 건강 및 웰빙, 사회적 대의, 회사 문화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대답한 이용자 비율입니다(초록색이 영국, 파란색이 미국). 게임이 끼치는 사회적인 영향이나 회사 내의 건전한 문화, 게임과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양립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게임 이용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 이용자의 주류가 더이상 20대~30대 남성만이 아니라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행한 2022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링크)를 보면, 여성 응답자의 게임 이용률은 73.4%로 남성(75.3%)과 큰 차이가 없으며, 30대와 40대의 이용률도 80%대로 충분히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며

저는 게임이라는 문화 컨텐츠의 성장 가능성을 언제나 믿으며 응원합니다. 매출액이나 이용자 수, 이스포츠 관객 수 같은 양적인 성장뿐만이 아니라, 게임 안에 담을 수 있는 메시지의 깊이 및 넓이,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력 등을 포함하는 의미로 말이지요.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변화의 물결을 애써 부정하며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단, 더욱 높고 크게 자라나며 가지를 넓게 펴는 게임이라는 나무에서 얼마나 다양한 열매가 자라났는지를 두루두루 바라보며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보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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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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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월 전
    블루스카이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글인데 다시 읽으니 또 감회가 새롭군요. 감사합니다.
  • LEADKUN 글쓴이
    2개월 전
    Locomotion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올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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