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G문화와 젠더] 아키야마 미즈키와 그 팬들이 겪는 가시밭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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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 하츠네 미쿠>의 <가시밭길은 어디로> 스토리 배너

(출처: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 하츠네 미쿠> 일본판 공식 YouTube 채널)

 

2020년부터 세가가 개발제공하는 모바일 리듬게임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 하츠네 미쿠>(약칭 <프로세카>) 의 일본판 이벤트 <가시밭길은 어디로>(荊棘の道は何処へ)의 스토리, 2024년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의 제공 기간 동안 이 게임의 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 스토리는 작중의 성소수자 캐릭터인 아키야마 미즈키의 성적 비밀이 타인에 의해 폭로되면서, 아키야마가 충격을 받으며 평소의 자아를 놓아버리는 듯한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줄거리를 두고 무수한 팬들이 다양한 담론을 제기하였다. “그래서 미즈키는 결국 남자냐 여자냐와 같이 미즈키의 지정 성별 문제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그렇게 명랑하던 애가 저렇게 된다니 너무 안타깝다”, “성소수자들이 실제 사회에서 겪는 문제를 흥행거리로 사용하다니 잔인하다라는 등의 감상과 비평들이 X(Twitter)<프로세카> 팬들 사이에서 공감 또는 논박의 형태로 무수하게 교환되었다. 해당 게임의 주된 이용자층이 18~24이고 최근 이 연령층의 이용자들은 성적 감수성에 매우 민감하다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쟁에서, 정작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현실 속의 성소수자들은 이에 쉽게 참여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그 양상을 지켜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처지에 놓인 <프로세카> 팬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돕는 것에 그 목적을 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까지 <프로세카>를 사랑하고 즐겨 왔다가 이번 일로 당혹감을 느끼는 성소수자 게이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언제 업데이트될지 모를 후속 이벤트의 스토리를 기다리며, 미즈키가 부정적 캐릭터로 전락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인고와도 같은 기다림의 과정을 견디게 해줄 희망의 실마리 또한 게임의 안과 바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외일 수 있겠으나 전자의 경우 <가시밭길은 어디로> 스토리의 8화에 진입하기 전에 등장하는 경고문을 통해, 미즈키와 그를 응원하는 게이머들이 통과해야 할 가시밭길에 끝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일시적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는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평소의 이벤트에서 항상 10분 가까이 선보이던 이벤트 애프터 라이브가 (비록 미즈키의 상상 속 상황일지언정) 1절로만 끝나고 담소 장면도 없이 불완전한 형태로 끝나는 연출은, 미즈키가 영원히 그 가시밭길 속에 갇혀 있지는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수용될 여지가 있다.

 

그리고 <프로세카>의 제작사인 세가는, 근래 이 게임뿐만 아니라 자사가 제작유통하는 다양한 게임들에서 인간 사회 속의 소수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자세를 거듭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자사 게임에서 성소수자들을 게임 속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사례로, 2016년에 발매된 <용과 같이:1>과 그 다음 해에 발매된 <용과 같이:2>에서의 트랜스젠더 이벤트 표현을 들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각각 2005년과 2006년에 발매된 같은 스토리의 작품들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과거 버전에 존재했던 성전환 여성으로부터 도망치기명목의 개그성 이벤트가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전부 삭제 처리되었다. 게다가 리메이크 버전에 추가된 신규 서브스토리 중에는 반대로 그 성전환 여성에게 시비를 거는 손님을 대신 때려눕혀 주거나, 성전환 수술을 받은 과거를 폭로하겠다는 사람으로부터 해당 여성을 지켜주는 스토리까지 등장한다.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 따르기가 적용되기 이전의 버전에서도 트랜스젠더는 딱히 부정적으로만 묘사되지도 않았는데, 2009년에 발매된 <용과 같이 3>에서는 일본의 현역 세라피스트(안마사)이자 패션모델인 트랜스젠더 여성 츠바키 아야나가 등장해, 주인공인 키류 카즈마에게 자신의 과거와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고 공감을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면 이 버전에서도 상술한 도망치기이벤트가 남아 있었으나, 이 또한 2018년에 발매된 동명의 리메이크 버전에서 삭제되었다. <용과 같이>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인 요코야마 마사요시, 당시에는 경솔한 판단이었다며 해당 이벤트에 트랜스젠더 타자화 요소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세가의 전향적 견해는 세가 북미 지사에서의 미디어 믹스와 성소수자 응원 캠페인, 그리고 그룹 지주회사인 세가사미홀딩스가 2021년부터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하는 MY FIRST LGBTQHANDBOOK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가의 영국 자회사인 SEGA Hardlight는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캐릭터가 무지개 깃발을 든 공식 아트를 선보이며 성소수자를 응원하는 자세를 보였으며, 미국과 영국에서 발간되는 시리즈 공식 코믹스에서도 탱글 더 리머위스퍼 더 울프라는 레즈비언 커플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처럼 세가사미홀딩스가 성소수자 전반을 배려하는 듯한 자세를 꾸준히 보이는 배경에는, 사내에 다양성 존중 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항구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그룹 차원의 견해가 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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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GA Hardlight가 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이미지

(출처: SEGA Hardlight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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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에서 발매중인 <소닉 더 헤지혹: 탱글&위스퍼> 만화책의 표지

(출처: Amazon.co.uk)

 

다시 <프로세카>의 이야기로 돌아와, <가시밭길은 어디로> 이벤트의 담당 작곡가인 나키소어찌할 수 없는 현실도 있다라는 발언을 생각하면, 세가는 성소수자들이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의도적으로 게임에 반영한 것이 분명하다. <프로세카>를 사랑하는 성소수자 게이머들에게, 지정 성별은 남성이지만 여성의 옷차림과 말씨를 가졌고,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곤란한 경우를 여러 차례 겪었고 (지금은 해외로 떠난) 누이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자신을 지탱해 온 미즈키는 동병상련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성소수자 게이머들이 예의 이벤트에 포함된 아웃팅 묘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사회적 소수자의 여부를 떠나, 보호받기만 하는 개인은 성장할 수 없다.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그 유형을 불문하고 심리적 시험의 시기를 피할 수 없으며,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거나, 혹은 동료의 도움을 받아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웃팅을 당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미즈키에게 과연 누가 손을 내밀어 줄 것인가? 아키야마 미즈키가 항상 상냥한 자신의 친구, 시노노메 에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를 제공한 인물은 아사히나 마후유였다. 이 소녀도 가정폭력으로 곤경에 처했을 당시 도망쳐도 돼라는 미즈키의 조언을 듣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영위할 기회를 얻었다.

 

이러한 과거 스토리와 세가라는 회사가 보여준 성소수자 친화적 태도에서 추론하자면, 가시밭길을 만나면서 냉소의 망령에 사로잡힌 미즈키에게, 도망칠 길을 열어줄 누군가도 또한 나타나지 않을까. 애당초 미즈키가 속한 유닛 25, 나이트 코드에서.의 구성원들은 각자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지닌 상태에서 서로를 도와가며 활동하였다. 에나의 담당 성우인 스즈키 미노리X 계정에 남긴, 상대를 알고 마주 보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는 발언, 결국 해답은 동료애와 공감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지 않을까?

 

<프로세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세가는 <가시밭길은 어디로>의 후속 이벤트에서 어떻게든 그 답을 제시할 것이다. 이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는 성소수자 게이머들에게는, 당장 힘들더라도 우선은 긴 안목을 갖고, 공동 개발사인 세가와 컬러풀팔레트, 크립톤퓨처미디어가 향후 이 논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후속 스토리에 담아낼지를 살피며 기다릴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개발사들도 성소수자 게이머들의 감정을 잘 이해해야 마땅하겠지만 말이다.

 
*ACG(Anime, Comics and Games) : 대만을 비롯하여 중국, 싱가포르 등 중화권의 애니메이션·만화·게임 애호가들이 해당 장르들을 통칭할 때 사용하는 약어. 본 저자는 이 호칭이 한국에서 통용되는 '서브컬처'보다 더욱 직관적으로 그 본질을 적시하고, '저급한 문화'로 오독되는 상황을 스스로 유발할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할 것이다.
 
 
작성자: MOEX(이정훈)
프리랜서 번역가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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